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마뉘엘 그루시 (문단 편집) == 평가 == '''[[워털루 전투]]에서의 오판 한 번으로 여생을 불행하게 보낸 인물.''' 물론 오판 자체는 그루시의 책임이 맞지만, 좀 더 사정을 살펴보면 나폴레옹의 책임도 크다. 당시 나폴레옹은 오랜 전쟁으로 다른 원수들이 대부분 전사하거나 배신해 인재풀이 극히 모자란 상황이었기 때문에, 남은 사람들 중 가장 믿을만한 인사였던 그루시를 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루시는 이전까지 평범한 기병대장이나 사단장 업무만을 맡았고, 그 이상의 업무는 맡아보지 못했다. 이런 인물에게 하루아침에 전 병력의 1/3을 맡겼으니 어찌보면 당연히 헤맬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루시는 [[마속|명령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하다 작전을 망친 게 아니다.]] 그는 엄연히 나폴레옹의 명령을 집행했을 뿐이다. 물론 그루시처럼 고지식하게 명령을 지키다 일을 망치는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군령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하다 일을 망치는 건 더 큰 문제다. 따라서 굳이 따지자면 잘못된 명령을 준수한 그루시보다 잘못된 명령을 내린 나폴레옹에게서부터 문제를 찾아야 한다. 하물며 명령을 내린 당사자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전에 화려한 전과를 올렸던 나폴레옹이다. 유능한 군주가 내린 명령을 평범한 부하의 입장에서 틀렸다고 부정하기도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루시를 고지식하게 만든 것 역시 나폴레옹이었다. 프랑스의 원수들은 나폴레옹에게 대들 만한 깡을 가지거나[* 란, 뮈라, 베르티에 등.] 짬이 나폴레옹 못지 않은[* 마세나, 모르티에 등.] 원수 몇몇들을 빼면 전쟁 내내 수동적인 모습만을 보여 줬다. 물론 이들 중 애당초 원수감이 아니었던 인물들도 있었겠지만, 나폴레옹이 부하들의 개별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 탓도 있다. 나폴레옹은 [[책임전가|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결과도 부하 탓으로 돌리는]] 반면, 자신의 공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과장하는 등 오만하고 독선적인 면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나폴레옹은 지나친 오만과 독선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나폴레옹이 자기 부하들의 단점은 신랄하게 평가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단점은 하나도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그의 패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남 탓은 그냥 독박을 쓰는 정도가 아니라 인신공격과 협박을 동반한 무시무시한 것이었고, 나폴레옹과 같이 싸워본 원수들은 그의 명령에 따르지 않아 나오는 부정적인 결과를 홀로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원수들은 융통성 있는 작전이 필요하거나 나폴레옹이 명백하게 실수한 상황에서도 바른 말을 하지 못했고, 그루시 또한 나폴레옹의 명령을 어겼을 때 어떤 책임을 질 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워털루에서의 패배가 그루시 때문만이 아님에도 '''[[내로남불|나폴레옹은 자신의 잘못은 전혀 돌아보지 않고 죽을 때까지 그루시 탓을 했다.]]'''] 그래서 그루시는 확실치도 않은 정보로 나폴레옹의 명령을 어기는 도박을 하느니 차라리 받은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기로 마음먹은 것이고 이는 그루시가 열성적인 나폴레옹의 지지자라는 점과 시너지 효과를 내어 결국 그루시는 융통성 있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일을 그르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워털루에서의 뻘짓으로 역사에서 그에게 남은 것은 '''[[흑역사|"Où est Grouchy(그루시는 어디 있는 거야)!?"]]''' 뿐이었다.[* 하지만 그루시는 당시 휘하의 병력들을 안전하게 살려서 프랑스 영토 내로 무사 귀환시키기는 했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무능력하기는 하나 충신이었음을 한번에 알 수 있으며, 애초에 배반자는 물론 충신이 아니면 이런 짓을 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절망에 빠진 나폴레옹은 이 소식을 듣고 자기에게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졌거니 생각했지만, 제국 의회나 수많은 기회주의자들의 훼방과 자기 자신의 의욕결여로 인해 포기했다.][* 그리고 설령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고 해도 나폴레옹이 다시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나폴레옹이 다시 야욕을 드러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온 유럽이 다시 단결하였고 프로이센 뿐만 아니라 러시아,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 유럽의 열강들이 군대를 몰고 프랑스로 오고 있었다. 워털루에서 이겼어도 나폴레옹은 결국 패망했을 것이라고 역사가들 사이에서 예측되는데 워털루에서 진 상태에서 유럽의 연합군을 정예병들이 상당히 고갈된 프랑스 혼자 이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https://www.waterloo-campaign.nl/bestanden/files/june18/obs.grouchy-nap.pdf|그루시가 17일 당시에 나폴레옹을 지원하려고 회군했어도 이미 시기가 늦어서 전투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거라고 보기도 한다.]] 나폴레옹이 처음부터 판을 잘못 짰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